들어가며
저는 2024년 초에 모든 휴가를 사용해버려 거의 10개월 가까이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휴가는 입사일에 맞춰 들어오기 때문에 2025년 3월 말까지 해외여행은 꿈도 못꾸고 있었는데요, 갑작스레 정부 주도로 2025년 1월 27일 월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휴가를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고도 황금 연휴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일-월-화-수-목 총 6일 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 살고 있는게 맞나, 방향이 잘못되진 않았는가, 다른 곳은 어떤가, 등등 각종 근심 걱정들로 인해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이 생겨난지 오래였고 빨리 해소하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황금 연휴이기 때문에 시기상 항공료 등등 모든게 굉장히 비싸지만, 견해를 넓힌다는 생각으로 돈 걱정을 하지 않고 맘 편하게 도쿄로 6박 7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겨울은 굉장히 춥다
호텔에서 묵게되면 알고 싶었던 일본 현지인들의 고충을 직접 몸소 느끼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해 도쿄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친구집(자취방)에 묵었습니다. 1LDK, 한국으로 치면 원룸인데 방에 난방이 일체 안됩니다. 난로? 기름 난로는 질식해서 쓸 생각도 못하고 전기 난로는 전기료가 비싸서 못쓰고 코타츠는 공간이 협소해 못씁니다. 전기 장판에 의존해 겨울을 버텨야하는데 집 안과 집 밖의 온도가 똑같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지진이 잦고 고온 다습한 여름을 견디기 위해 극단적으로 여름에 최적화 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일본 법률상 집을 지을때 단열재와 관련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건축비를 줄여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에 의해 이렇게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겨울에 바깥에서 화목난로 없이 캠핑하던때가 생각이 나더군요. 너무 추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야하는데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도쿄가 지리상 부산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추워도 영상 10도 정도인데 난방이 일체 안되고 바람이 불다보니 체감온도는 영하 수준이었습니다. 샤워나 목욕 후 물기를 닦으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온도 차이로 인한 혈압의 급격한 변화로 쇼크가 오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 처음엔 믿겨지지 않았는데 좀 지내다보니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집 안에서 과자를 먹는데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게 보이더군요.
일본 청년들은 집 걱정이 없다
부동산들을 돌아봤는데 2LDK 맨션(한국으로치면 소단지 아파트)이 보증금 없고 월세 70만원에서 80만원 정도, 3LDK는 90만원, 집 한채를 통째로 빌리는건 100만원부터. 월세가 한국과 비교하면 굉장히 저렴했습니다. 매매도 1억원부터 시작하는걸 보아 집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어보이더라구요. 왜 저렴할까 생각해보니 규모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전철로 10분을 달린 거리가 전부 멘션과 아파트로 가득했고 밀도 또한 높아 빽뺵했습니다.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인구수는 줄고 있으니 저렴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해외 자본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특별구가 아니면 여파가 아직 오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마 민영화로 인해 비싼 교통비가 이를 막아주는게 아닐까 싶네요.
일본 교자, 오사카식 타코야끼는 맛이 없다
적은 모수를 바탕으로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경험상 진짜 별로였습니다. 교자는 재료값을 낮추려고 그런건진 모르겠으나 하나같이들 전부 양배추를 가득 집어넣고 고기를 아주 잘게 다지고 적게 넣어 비건 만두를 먹고 있는건가 착각이 들 정도로 맛이 건강했고, 오사카식 타야끼는 속이 익지 않아 반죽물 맛이 느껴지면서 야채는 또 왜그리 많이 넣었는지 마늘과 양파가 아삭아삭 씹혀 식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방 소도시에 잘하는 가게에 가서 먹으면 다르려나요.
야끼니쿠는 무조건 탄과 하라미를 먹어야 한다
야끼니쿠에만 수십만원을 쓸 정도로 여행기간 내내 야끼니쿠에 환장했습니다. 탄 시오(소금으로 간이 된 소의 혀), 하라미(안창살)을 가스불에 구워먹는데 어딜 가든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푸드 파이터가 아니다보니 맛에 대한 서술이 너무 어려운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일본은 물가는 생각외로 저렴하지 않다
라이프, 이온 등등 다양한 마트를 돌아다녀봤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했을때 크면 반값, 보통은 75%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외식은 교자와 맥주 하나만 시켜먹어도 만원을 우습게 넘길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해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 밖에 없어보이더군요. 요시노야, 츠키야, 마츠야 같은 저렴한 가게는 생각외로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후쿠시마 쌀을 쓴다는 이유로 안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맥도날드는 우리나라 이마트 수준으로 많이 있는데에다 버거 세트가 우리나라와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많이들 가는 것 같더군요. 마트에서 조리된 식품을 판매하는건 마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세일 딱지가 붙으며 사먹을만한 가격이 던데, 세일 딱지가 안붙으면 이 양에 이 음식을 이 돈을 주고 먹는게 맞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일본인도 한자를 잘 모른다
한자를 읽을 수는 있으나 쓸 줄 모르는 사람, 한자를 쓸 수는 있으나 어떻게 읽는지 모르는 사람, 한자를 쓰고 읽을 수는 있는데 어떻게 사용(문장으로 만드는 것)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 등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읽는 방법도 다양하고 규칙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일본인들은 평생 국어(한자)를 공부한다고 하더군요. 일본어 특성상 한국어처럼 띄어쓰기를 채용하고 한자를 안쓰게 된다면? 도저히 읽을 수 없게 난해해지기 때문에 한자를 쓸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세종대왕님 만세.
생 콜라는 그냥 콜라다
생 콜라라고 해서 맛이 특별히 다른게 아니었고, 그냥 콜라 맛 이었다.
국가 수준의 검열이 없다
인터넷 검열 없고, 서점의 19금 코너도 검열이 없었다. 그만큼 개인주의를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애플워치로 교통카드 써봤고 편했다
왜 이걸 아직도 국내에 못들여온건지 한탄스럽기만 하다. 인식속도도 굉장히 빠르고 인식범위도 넓었다. 스치기만해도 인식되는 수준.
오챠노미즈 악기 상가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작았다
편의점 크기의 악기점이 10개 정도 모여있는 곳이었다. 유이 기타, 미오 베이스 같은 유명하고 레어한 상품은 많이 진열되어있었는데 U-Bass 같은 특이한 악기는 아예 없었다. 기타만 볼 생각이라면 차라리 하라주쿠 펜더 스토어를 방문하는게 좋을 듯. 아키하바라 바로 옆에 있어서 걸어갈 수도 있다. 아키하바라를 간다면 한번쯤 들러볼 만 한듯.
일본 공과금은 굉장히 비싸다
샤워도 하루에 1번만 하고, 집에서 요리도 안해먹는데에다, 전기도 전기장판과 스마트폰 충전 외에는 쓰질 않는데 수도 5만원 전기 5만원 나오는게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쓰듯이 쓴다면 과금 폭탄 맞을 것 같다. 이것 또한 민영화의 패악질로 보이는데, 수도 비용이 부담되어 욕조에 물을 한번 받아두고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쓴다던지 아예 씻질 않는다던지 하는 문화?가 이해하기 싫지만 이해가 되었다. (문화라기보단 사회현상으로 부르는게 더 옳을지도) 코인 세탁방도 세탁 양에 비해 가격이 매우 비쌌고. 공항이나 지하철에서 악취가 심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았다.
점심즈음 집에 누워있으면 밖에서 애들이 뛰어놀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애들 목소리를 오래간만에 듣는 것 같았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는 등 굉장히 귀여웠다. 애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젊은 세대들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것을 증빙하는게 아닐까.
외국인이 많다
도쿄라 어쩔 수 없나보다.
자전거, 자동차 주차장 비용이 상당하다
자가 주택이 있지 않는 한 자전거나 자동차를 산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같다. 자전거를 하루에 몇천원씩 내면서 바깥에 주차하는데, 비바람 다 맞아 녹슬고. 자동차는 만원수준이고.
일본은 분리수거를 안한다
아니다, 사실 분리수거를 하는데 이상하게 한다. 플라스틱 페트병만 분리 배출하고 나머지는 전부 아무 봉지에 담아 버린다. 우리나라는 음식물까지 따로 배출하는게 사회적 합의인데 일본은 아니었다. 종량제 봉투도 없다. 관리비에 쓰레기 버리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샤오미에서 자동으로 봉지 묶어주는 쓰레기통을 출시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전철이 정해진 시간에 온다
우리나라는 시간과의 오차가 크다. 15분에 온다고 했는데 17분에 온다거나, 13분에 온다거나.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정해진 시간에 칼같이 맞춰서 전철이 오고, 칼 같이 떠난다. 선로 보수 등의 문제로 인해서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다면 과속을 한다. 휘청일 정도로 급가속을 한 전철 안에 있어봤다. 전철은 로컬선, 세미-레피드선, 특급선 이렇게 3개가 있는데 로컬은 한번 놓치면 정확하게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어떻게 아냐고? 전철을 3번이나 잘못 탄 경험을 바탕으로 깨우쳤다.
계산대 기계에 지폐를 한번에 여러장 넣어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폐를 한장, 한장 기계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한번에 다 집어넣어도 된다. 잔돈 지폐도 한번에 나온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이게 가능한건지 의문이다. 동전도 마찬가지로 한번에 쏟아버려도 된다. 1엔과 10엔이 많이 남아 처리하기 곤란하다면 근처 마트에 가서 아무거나 집고 구매할때 털어넣으면 된다.
커뮤니티가 다양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디시인사이드, 더쿠, 에펨코리아, 루리웹, 인벤, 뽐뿌 등등 메이저한 커뮤니티가 많이 있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일본인 여성에게 물어봤는데 X > 인스타그램 > 틱톡 순으로 쓴다고 하더라. 특히 젊은 사람들은 Be Real 이라는 앱을 쓰고, 늙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쓰고. 블로그도 딱히 하진 않는 것 같아보였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인해 생겨난 문화인걸까.
유니클로가 저렴하다
애초에 저렴하면서 좋은 품질을 내세우는 브랜드이긴 한데, 우리나라와 비교했을때 75%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5만원에 샀던 바지가 일본에서는 4만원. 무지도 꽤 저렴했다.
오전 9시까지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만원 전철이 된다
전철이 길지 않은 것에 반해 타려는 사람으로 문전성시 이다 보니 어딜 가든 김포 골드라인 느낌을 을 수 있었다. 오전 10시부터는 좀 탈만해지는데, 오후 5시부터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만원 전철이 된다. 도쿄 외곽으로 나갈수록 집 값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오랜시간 타는 사람이 많은 것 같고 인파가 좀 처럼 해소되질 않고 쌓이기만 하다보니 어지럽다.
지하철 요금을 미리 내는게 가능하다
1개월치 분, 반년치 분, 일년치 분 등등 다양한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고 미리 요금을 내서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꽤 많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회사 출퇴근 등의 경우는 다 이 계약을 사용하는 듯.